2015년 5월 2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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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 2015년 5월 22일 (금) 밤 10시 45분 
부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부 
원제: Gone with the Wind 
감독: 빅터 플레밍 
출연: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 레슬리 하워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제작: 1939년 / 미국 
방송길이: 112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고향 타라에 돌아온 스칼렛은 황폐해진 땅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전장으로 나갔던 애슐리가 집으로 돌아온다. 스칼렛은 여전히 애슐리를 잊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애슐리 때문에 괴롭다. 또한 세금 300달러를 내지 못해 힘겨워하는 가운데,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가 말을 타고 나가 낙마해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때마침 스칼렛은 전쟁 때문에 큰돈을 번 레트가 군 형무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그를 찾아가 자신을 담보로 300달러를 빌려달라고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그리고 우연히 동생의 약혼자인 프랭크 케네디를 만나게 되는데, 스칼렛은 그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동생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거짓말을 한 뒤, 자신이 프랭크와 결혼을 한다. 그런데 프랭크 역시 정치 모임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스칼렛은 레트 덕분에 목숨은 건지지만 또 다시 미망인이 된다. 그리고 돈 많은 레트와 또 다시 결혼을 한다. 그러나 애슐리를 향한 스칼렛의 마음은 변할 줄을 몰라 레트와의 결혼생활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렇게 자꾸 어긋나기만 하던 두 사람은 끝내는 아이까지 유산되는 아픔을 겪게 되고 결국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주제: 
이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 일어나기 전, 남부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땅이었던 조지아 주 타라를 배경으로 하여 남부의 한 강인한 여인과 그녀의 사랑, 그리고 갈등을 그린 대하 서사극이다. 2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안에서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 스칼렛 오하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쟁 전의 평화로운 모습, 남북 전쟁 당시의 다양한 인간과 사회상은 물론, 전쟁 후의 황폐함을 극복하려는 남부 사람들의 모습까지 그려내고 있다. 

감상 포인트: 
영화의 원작은 1936년 무명 작가였던 마거릿 미첼이 쓴 동명 소설로, 우연한 기회로 출판되어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곧바로 영화화까지 되기에 이른다. 다양한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꼭 봐야 할 고전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또한 당시 신인이었던 비비안 리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녀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스칼렛 역에 캐스팅되었다. 그녀가 연기한 스칼렛은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엄청난 흥행 수익을 거뒀으며,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석권하였다. 

감독: 
빅터 플레밍 감독은 1889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라카냐다에서 출생해, 1949년 1월 6일, 애리조나 주 코튼우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플레밍 감독은 1910년에 스턴트맨으로 영화계에 첫 발을 들였다. 정비공이자 전문 레이서였던 그는 주로 자동차 스턴트를 많이 했다. 그리고 카메라에도 관심이 많아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감독의 많은 영화들에 촬영 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곧바로 감독 자리에도 뛰어들어 만든 첫 히트작이 이다. 이 영화로 게리 쿠퍼는 스타덤에 올랐다. (쿠퍼가 그 은혜를 잊지 않아 두 사람은 평생 친구로 지냈다고 함.) <레드 더스트(Red Dust) (1932)>, <밤쉘(Bombshell) (1933)>, <보물섬(Treasure Island) (1934)> 등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1930년대의 그의 영화를 통해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 그의 감독 인생에 있어 가장 성공한 두 작품은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와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1939)>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작품 모두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던 중 플레밍이 대타로 들어가서 작품들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1940년대에 만든 영화들 중에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 (194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잔 다르크(Joan of Arc) (1948)>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흥행 수입 면에서도 실패작으로 남았다. 

주연: 클라크 게이블 (Clark Gable / 1901~1960) 
게이블의 별명은 '할리우드의 왕'이다. 1930년대에 그는 남성성의 화신으로 스크린을 장악했다. 여자를 거칠게 유혹하지만 제임스 캐그니 같은 정신 이상적 분위기 없이, 루돌프 발렌티노처럼 보통 남자들의 따돌림을 유발하는 유약함도 없이 여심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 군단은 레트 버틀러의 역할을 게이블이 아닌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미첼 본인은 바실 래스본을 추천했음에도 말이다. 
게이블은 무성 영화에서도 단역과 엑스트라로 출연했지만, 그의 으르렁거리는 남성적인 목소리는 유성 영화에 더 적합했다. 몇 차례 갱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시크릿 식스(1931)>, <핑거 포인츠(1931)>) 후 <레드 더스트(1932)>에서 잘 어울리는 냉소적인 모험가 역에 캐스팅되면서 진 할로와 매리 애스터와 사랑을 나누며 열대의 열기 속에서 셔츠를 찢어버릴 기회를 잡게 된다. MGM은 그가 존 크로포드(<댄싱 레이디(1933)>)와 할로(<홀드 유어 맨(1933)>)와 계속 함께 출연하도록 했지만, 인기를 얻은 다음 주어진 역할은 사실 일종의 벌로서 제시된 것이었다. 
MGM은 그를 프랭크 카프라와 콜럼비아 영화사에 떠맡기고 클로데트 콜버트와 함께 스크루볼 코미디 로맨스 로드무비인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에 출연하게 했다. 그러나 게이블의 관객이 사랑했던 것은 바로 이 영화였다. 잘난 척 하는 말괄량이를 길들이고 러닝셔츠도 입지 않고 당근을 우적우적 씹어대는 남자 중의 남자의 모습 말이다. 게이블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고 메이저 스타로 자리 잡으며 규모가 큰 영화에서 주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맨해튼 멜로드라마(1934)>의 선량한 갱스터 역과 <바운티호의 반란(1935)>에서 반란 지도자 역할, <샌프란시스코(1936)>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동안 중요한 교훈을 얻는 도박사 역 등이다. 
<파넬(1937)>의 아일랜드인 정치가 역할로 유명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멋지게 만회했다. 1930년대 말에 그는 <노 맨 오브 허 온(1932)> 단 한 편에서 함께 출연했던 캐롤 롬바드와 결혼했다. 1942년에 롬바드가 비행기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게이블은 할리우드를 떠나 공군에 입대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해져서야 스크린으로 돌아와 주로 장교 역할(<커맨드 디시전(1948)>)이나 정통 서부극(<론 스타(1952)>)에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인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1)>에서는 늙어가는 현대의 카우보이를 연기했지만 여전히 밧줄을 던져 마릴린 먼로를 사로잡을 만큼 충분한 남성적 매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클라크 게이블은 할리우드의 남자 주연들의 정수 같은 인물이었다. 거칠면서도 잘생긴 외모의 그는 스크린 안팎에서 여자들을 사로잡았다. 초기에는 대개 연상의 여인들과 얽혔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기였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할 존재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자신의 성공에 여인들을 이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다섯 번 결혼했지만 가장 사랑한 사람은 캐롤 롬바드였다. 1942년 그녀의 죽음은 그를 무너뜨렸다. 게이블은 자신의 여성편력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나 이거 원,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그 모든 여자들의 품속에 다 뛰어들었다면 아마 낚시하러 갈 시간도 없었을 거요." - 출처 : 501 영화배우-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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